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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간 사



 

 나무에는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듯이 사람들은 저마다 근본이 있는 것이요 좋은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린 나무는 무성하게 자라 알찬 열매를 맺듯 오랜 전통에 훌륭한 조상님을 모신 집안은 크게 번성하기 마련이다.  나라에는 역사가 있듯이 집안에는 족보가 있어 뿌리를 연구하고 선대로부터 면면이 이어온 내력을 제시하고 있으니 이 아름답고 고마운 일 아닌가!
 우리 오씨는 옛날 중국에서 왕국을 건설하여 한때 중원의 맹주로서 세를 떨쳤던 태백가(泰伯家)의 후예로서 그 근원은 황족이

었던 명문가로 동북아 일대에서 거성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신라 지증왕 원년 신사(501년)에 무혜공 휘 첨(武惠公 諱 瞻)께서 중국으로부터 오시어 뿌리를 내리신 것이다.
 그동안 11세 다련군 휘 희(多憐君 諱 禧)의 따님 장화왕후(莊和王后)는 고려태조 왕후가 되시었고 여진을 물리쳐 고려를 위기에서 구하신 18세 문양공 휘 연총(文襄公 諱 延寵)선조님 등 양장 현상들이 대를 이어오시다가 24세에 이르러 현보 현좌 현필(賢輔 賢佐 賢弼) 3형제분이 글란을 정벌하신 공으로 분봉을 받으셨는데 이중 맏이인 현보(賢輔)께서 해주군(海州君)이시다.
 그러나 우리 선조님들이 족보를 만드신 것은 세대가 한창 지난 영묘 정해(1767년)였다 당시 뚜렷한 기록이 없는데다가 각 집안에서 제시한 보계가 서로 달라 의견통일을 보는데 큰 애로를 겪으셨으며 모진 압박과 수난속에서도 정통성을 유지하며 갑술보를 거쳐 임술보로 이어져 왔기에 이젠 모든 관파에서도 이를 인정하고 문양선조님을 모신 덕산사(德山祠)나 3군(三君)을 모신 금양단(錦陽壇)에 모든 자손들이 정중히 참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몸에게 본보추진의 임무를 맡겨주신 종친들께서는 이 정통성을 이어받아 누구에게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족보를 만들어 주실 것을 동시에 부여했을 것이다 그럼 이 훌륭한 족보의 정의는 무엇일까?
 우선 상계가 명확해야 하고 다음 전 종친의 빠짐없는 참여가 중요하다 그리고 누구나 쉽게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잘 다듬어져 모두가 본보에 등재된 것을 긍지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처음 본보 편찬의 중책이 이 몸에게 주어졌을 때 매우 두려웠지만 부족한 나를 믿고 맡겨주신 종친들에 대한 고마움에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루고야 말겠다는 소명의식이 생겨 그 신념으로 이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족보편찬이란 신념과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란 걸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다는 걸 느꼈다.
 명확한 상계 참으로 어려웠으며 전 종친의 참여 너무나 기대 밖이어서 하나라도 더 참여시키려다 보니 시일이 오래 걸리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쉽게 보고 이해하는 족보 더욱 어려웠다.
 한동안 마음의 고통도 있었지만 본보편찬을 위해 열심히 뛰어주시고 성원하여주신 종친들이 많이 계시어 용기를 잃지 않고 이를 추진할 수 있었다 그분들을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겠지만 경향각지를 드나들며 열성껏 수단하여주신 위원님, 자기집안의 모든 책임을 지고 무난히 수단을 하여주신 지파회장님, 자기집안 수단을 다하고 다른 집안 수단까지 하여주신 위원님, 그리고 상계를 계속 연구하여 자료를 제공하여주신 종친, 인터넷매체를 이용 전 종친의 참여를 종용하여주신 종친 등 이러한 종친들이 계셨기에 본보 편찬작업을 무난히 할 수 있었다고 여긴다.
 이제 전 종친의 성원에 힘입어 본보를 출간하게 되어 심히 다행이지만 오히려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금보가 과연 우리 종친들이 긍지를 느낄 수 있는 훌륭한 족보로 만들어졌는가 이다 아니 그보다는 종친들에게 누를 끼치지는 않았는지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걸 어쩔 수 없다.
 내 좀 더 나은 족보를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여 보았다.
 먼저 상계에 있어서는 내려오심이 너무 멀어 여러설이 있지만 중국에서 왕국을 건설 오후로 추봉 받으신 태백세가(泰伯世家)의 태백왕(泰伯王)을 득성시조로 받들고 비조 무혜공 휘 첨(鼻祖 武惠公 諱 瞻)으로부터 24세 휘 현보(諱 賢輔)까지 고증자료를 통해 오류를 정리하면서 우리의 정통성을 좀 더 확실히 하기위해 휘 현보(諱 賢輔)를 1세로 받들기로 하였다.  다음 남녀신분을 동등하게 하기위해 시집온 배위나 시집간 딸 모두 생년월일 경력 등을 똑같이 기재토록 하였다.
 특히 이제 부터는 책자족보와 더불어 젊은 종친들이 선호하는 전자화 인터넷족보를 구축하여 쉽게 찾아보고 재미를 느끼게 하였으며 금번 보첩 편찬을 마무리 해주오씨대동종회를 설립하여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 종친들 간에 긴밀하게 유대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도 또 하나의 큰 성과라 할 수 있겠다.
 지난날 우리 선조님들이 그 어려운 수보를 하면서 종친간 연락체계를 유지해 왔다면 이번 수보에 종친을 찾는데 그 어려움을 겪고 또 이탈하는 불행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여기며 이번만큼은 대동종회를 구성하여 종친들 간에 항상 유대를 돈독히 할 수 있는 체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끝으로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은 이 몸에게 대임을 맡겨주신데 대하여 .깊은감사를 드리며 우리 모두 이번 수보를 통하여 조상을 숭배하고 종친 간에 화합하는 풍토가 조성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삼가 인사에 가름한다.

서기  2014년  4월    일

해주오씨 대동족보편찬위원장 오용석